공은 이미 던져졌다. (핀볼 게임)







에르메스는 매년 어떠한 테마를 가지고 매장 윈도우를 꾸미고 있는데
2015년은 “플라뇌르(Flâneur, 산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존 주제+여름 시즌+웨딩(신라 호텔의 특성을 반영)이 결합된 내용을
생각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회의 끝에 아래와 같은 시안과 내용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의도 되었든 그렇지 않든 무언가 새로운 일이 시작 될 때, 
혹은 그 일이 시작되어 내 손을 막 떠났을 때 '공은 이미 던져졌다.'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매순간 크고 작은 자신의 공들이 눈앞에 던져지고, 
그 것을 계속해서 쳐내기도,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던져버리기도, 떨어져 그대로 멈추게 두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 핀볼 게임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공을 계속해서 튕겨내어 가능한 많은 점수를 얻고, 
게임을 즐기는 시간을 늘려 리플레이 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어쩌면 인생은 핀볼게임과 닮았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길고 긴 산책 중 내 앞에 던져지는 가장 크고 무거운 공은 무엇일까. 
한 사람을 만나서 앞으로의 남은 삶을 함께 산책 하자고 약속하는 결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혼이란, 인생의 길을 혼자 산책해오던 어느 날, 마음 맞는 동반자를 만나 함께 걸어갈 새로운 산책로를 개척하고, 
그 길 위에서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계속해서 공을 던져 올리는 일이 아닐까. 
누군가는 애초에 그 공을 던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공이 던져졌다면 가능한 구멍에 빠지지 않게, 
떨어져버리지 않게 계속해서 쏘아 올리려고 노력해야한다. 

하지만 인생이나 결혼을 핀볼 게임 한판과 동일시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공이 떨어지고 더 이상 리플레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게임을 할 때처럼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산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처럼 떨어진 공을 다시 주워 던져 올려야한다. 
그러니 공이 떨어져버렸다고 해서 너무 낙심할 필요도 없다. 동전을 넣고 다시 게임을 시작하면 된다.
트루먼 대통령이 말했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 물론 그 공이 핀볼 게임의 공은 아니지만 내 앞에 던져졌던 그 공에 책임을 다했고, 
다하면 될 일이다. 인생은, 결혼은, 게임 한 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지 매사에 게임을 하듯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던져진 공에 책임을 다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물론 지친다면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말이다.   
     
인생이 공을 계속해서 던져 올리는 게임과 닮았다면, 결혼이 수많은 공들 중에 가장 크고 무거운 공이라면, 
그 공을 던져 올리는 순간은 결혼식, 결혼식의 피로연이 아닐까 생각했다. 새로운 게임을 막 시작했을 때에, 
새로운 산책로를 개척해 막 발을 디뎠을 때에, 새로운 공이 쏘아 올라가 상승하고 있는 그 순간의 기쁨과 설렘이 
어쩌면 골치 아팠을지도 모르는 결혼준비가 끝나고, 식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눠 마시며 
함께 춤을 추는 피로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던져진 공은 언젠가 낙하를 하고, 마냥 기쁘고 행복했던 피로연도 아침이 채 밝기 전 끝이 나지만, 즐거운 게임 한 판을 끝내고 난 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도 우리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 생각하고 오래도록 기억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번 가을시즌, 인생의 산책에 있어 가장 즐겁고 큰 사건으로 기억될 결혼식, 
결혼 피로연을 핀볼 게임과 접목해 에르메스 신라점 윈도우를 꾸며낼 예정이다.
그리고 그 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난 즐거웠던 시간(그것이 자신의 결혼식이든, 어릴 적 해봤던 핀볼 게임이든 간에)을 기억할 수 있게, 혹은 앞으로 다가올 즐거운 시간을 기대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글: 김윤하




-디자인, 제작, 설치: 김윤하, 박길종, 송대영
-시안 그림: 송대영
-시안 글: 김윤하
-설치 도움: 신동환, 은혜용달
-장소: 에르메스 신라 호텔
-기간: 2015년 8월 중순부터 11월 중순

Installation window realized by Kiljong Arcade in 2015 for the Hermes store 
Photo Sangtae Kimⓒ Hermes